[전시] 복행술, The art of not l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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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행술 / The art of not landing


      • 참여작가: 김영글, 이미래, 이제, 정희승, 양윤화+이준용
      • 기획: 조은비
      • 디자인: 박연주
      • 전시기간: 2016년 11월 17일 (목) ~ 2016년 12월 11일 (일)
      • 오프닝 리셉션 : 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오후 6시
      • 장소: 케이크 갤러리 (서울시 중구 황학동 59번지 솔로몬빌딩 6층)
      • 관람시간: 11시 – 18시 (월요일 휴관)
      • 주최: 케이크갤러리
      •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문의: cakegallerykr@gmail.com

 

케이크갤러리는 2016년 11월 17일부터 12월 11일까지 기획전 《복행술》을 개최합니다. 케이크갤러리의 2016년 마지막 전시인 《복행술》은 독립 큐레이터 조은비가 기획하고 다섯 작가(팀)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전시는 사물의 본질과 사건의 진상은 실종되고, 압축된 키워드와 수사, 선동만이 존재하게 된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언어가 종종 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담아내거나 포착하지 못함에도 우리는 너무나도 무수한 말들에 둘러 쌓여 그것을 끊임없이 생산, 유포해내고 또다시 다른 말들로 이를 덮어버리곤 합니다. 《복행술》은 언어가 대상의 표면에 완전히 들러붙기 전에 그 사이로 침투하여 얇은 막(veil)을 치고자 합니다. 그렇게 이 전시는 상황과 인물, 사건 사이에 개입해 이야기의 유동성을 보존하고, 언어의 필연적인 실패에 미술의 방식으로 대꾸합니다.

[공지 | 연계 프로그램]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 이현재(여성철학자, 서울시립대 HK 교수) 강연 

일정: 2016년 11월 26일 (토) 오후 4시
장소: 케이크 갤러리
협력: 도서출판 들녘

*참여신청: 연계 강연 신청서 (설문지에 응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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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설치전경 (사진: 정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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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의미가 놓일 수 있는 장소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언어의 힘, 언어의 적절성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언어의 도달에 있다.” (토니 모리슨, 1993)

말 많은 세상이다. 이제는 그 ‘말’로 세상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말의 생산과 유포, 전파가 빠른 시대에 문장은 짧아지고, 단어는 ‘우물가(井)’를 맴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검색창에 ‘문장’을 써넣지 않는다. 조합된 문장보단 파편적인 단어가 더 많은 검색 결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웹서핑은 물음을 ‘키워드’로 환원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애초의 질문은 제쳐둔 채 검색 목록과 연관 검색어를 늘려가는 것이다. 뉴스를 덮는 뉴스와 타임라임을 밀어내는 타임라인이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새로운 단어를 쉼 없이 우리의 눈앞에 띄워보낸다. 그러므로 키워드가 지나간 트래픽의 수면 위에서 포말처럼 부서지는 건, 우리의 시간뿐만이 아니라 ‘물음’ 그 자체이다.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는 대통령(?)의 단언은, 그의 말이 대개 그러하듯 번역하기 난감한 말이었다. 외신들은 이 발언 속 ‘대박’을 제각기 다르게 번역하기 시작했고, 결국 정부는 이를 ‘통일’시킬 말로 ‘보난자’란 그럴싸한 단어를 골라냈다. ‘보난자(bonanza)’는 미국 서부의 채굴꾼들이 ‘노다지’를 일컬을 때 사용하던 단어인데, 통일을 오로지 경제적 가치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발언의 의도와 노골적으로 상통한다. 이처럼 환원은 “사유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성을 반복”1) 하는 정치적 레토릭이자 권력의 오랜 통치술이다. 보난자라는 명명(통일=대박=노다지)이 통일에 관한 여타 다양한 층위의 논의의 가능성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최근의 혐오 발언은 또 어떤가.2) 통치자는 통치 대상을 분류하고 ‘딱지’를 붙인다. 무슨 녀, 무슨 충과 같은 언어적 낙인,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몇 개의 ‘키워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환원이며 본질 실종이다. 이러한 언어적 규정과 환원의 순환 고리는 대상과 사건을 —환원, 편견, 혐오와 같은— 언어적 ‘손때’가 묻어 있는 하나의 ‘키워드’로 대체해 그 이면을 너무나도 쉽게 망각으로 이끈다.

이 전시는 이처럼 ‘키워드’가 대상의 표면에 완전히 들러붙기 전에, 이미지와 캡션이 서로 단단히 달라붙기 직전에, 그 사이로 침투하여 얇은 ‘막’(veil)을 치고자 한다. 마치, 일식(日蝕)을 육안으로 관찰하기 위해 필름으로 눈 앞을 가리듯이 말이다. 하늘과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이 불투명한 ‘막’은, 외려 흰 태양과 검은 달의 윤곽을 눈 앞에 드러낸다. 이는 무언가를 직시하기 위해 도리어 그 앞을 가려야만 하는 역설의 은유이자, 확신에 찬 단언 앞에서 다급히 외치는 ‘판단 중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전시는 상황과 인물, 사건 사이에 개입해 이야기의 유동성을 보존하고, 언어의 필연적인 실패에 ‘불확정성’으로 대꾸하고자 한다. 물론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팀)의 작품이 실제로 언어적 작용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업들은 ‘자극적인 말’ 옆에서 침묵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물음은 즉답되지 않고, 행위는 일정 자세를 유지하고, 사물은 미완에 머무른다. 하나의 ‘언어’에 ‘안착(landing)’하지 않고 기표와 기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말의 어리석음 또는 오류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규정되지 않는, 그럼으로 미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불확정적인 것들은, 한 가지 해석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스스로 배태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 복행(復行)은 항공기가 착륙 직전에,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르는 조작을 의미한다. 이 전시에서는 안착하지 않고 우회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복행술’이란 조어를 만들었다.

1) 정희진의 어떤 메모 : “카프카에서 출발하여 까마귀로 끝나지 않으려면” (한겨레 신문, 2014. 9. 26)
2) 인종혐오발언 연구자인 마리 J. 마츠다는 혐오발언을 “그 메세지가 역사적으로 억압당한 집단을 향한다.”(Matsuda, 1992)라고 정의내린다. “역사적으로 억압당한 집단(historical oppressed group)”에 남성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남성 혐오발언’이 성립되기 힘든 것이다.

It’s a world of many words. It seems like the world could now be fully explained in these “words.” In the era of rapid production, circulation and dissemination, sentences get shorter and words circle around hash tags. Perhaps this is why we don’t put in a “sentence” in the search engine. Word fragments promise more results than a composed sentence. As such, web-surfing advances while reducing questions into “keywords.” It drops the initial question and increases search records and related search terms. News that covers over other news and feeds that push down other feeds send new words like endless waves in front of our eyes. On the traffic’s surface where keywords had gone by crashes down not only our time but also the “question” itself, like foams.

The president’s declaration – “I think unification is, in one word, dae-bak” – was tricky to translate, as her words usually are. When each international press started to translate “dae-bak” into different terms, the government came up with a decent word – “bonanza” – to “unify” the term. “Bonanza” is how the miners from the American West used to call “nodaji (“bonanza” in Korean).” This term translates the explicit intention of the utterance of reducing the unification into an economic value. Such reduction is a political rhetoric that “does not generate new concepts through thinking but repeats what already exists”1)  as well as the authority’s old ruling tactics. Naming it bonanza (unification = dae-bak = nodaji) is a reduction and distortion of the potential to discuss the issue in terms of diverse aspects. Take the hate speech prevalent these days. Those in power classify and stigmatize those under their control.2)  Stigmatizing neologisms that take “-nyeo” or “-chung” as their suffix (each with an indication of women and worms respectively), several “keywords” around the Sewol Ferry incident are the most problematic reduction and misplacement of the essence in today’s society. Such linguistic regulation and the circle of reduction replace the object and phenomena in question with a single “keyword” that bares the linguistic “stains” such as reduction, prejudice, and hate. And the other side of the story is easily led to oblivion.

Before a “keyword” is completely attached to the object’s surface, when the image and its caption is not yet tightly stuck together, this exhibition attempts to stretch a thin “veil” between them. This could be liken to a film which covers the bare eyes to observe the solar eclipse. The opaque “veil” that comes between the sky and the eyes rather uncovers the contours of the white sun and the dark moon. This is a paradoxical metaphor – what needs to be in direct sight should necessarily be covered – as well as a message of a “suspension of judgment” in face of an assertive declaration. “The Art of not Landing” responds with “uncertainty” to the language’s necessary failures and preserves the flexibility of narratives by engaging in the circumstances, characters, and events. Surely, five participating artists (teams) do not literally compose linguistic mechanisms. Rather, their works seem to keep their silence next to the “excitable speech.” The questions are not answered immediately; the actions maintain a certain position; objects stay unfinished. These are attempts to capture the foolishness and errors of words by endlessly wandering around the signifiers and signified in place of “landing” on a single “language.” The uncertainty inspires the sensations that are not regulated and thus unknown. And as it bears in itself the potential to refuse a unified interpretation, it does not stop the conversation.

* “Bokhaeng” (translated as “not landing”) indicates a flight technique of taking off to a different direction once more just before landing. In this exhibition, a neologism – “Bokhaeng-sul” (translated as “the art of not landing”) – signifies the skill to deviate instead of safely landing.

1) A note of Heejin Jeong: “If we were not to start from Kafka and finish with a crow” (Hankyoreh Shinmun, September 26, 2014)
2) A researcher of racist hate speech M. J. Matsuda defines hate speech as “the message directed to the groups who have been historically oppressed.” (Matsuda, 1992) As men have never been a “historically oppressed group,” there is no such thing as “hate speech against male.”


[작품 소개]
김영글은 작업을 위한 개념적인 장치로 텍스트를 사용하면서 ‘미술가의 글쓰기’를 작품 전면에 내세워왔다. “해마가 사라졌다.”는 작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해마찾기》(2016)는 해마에 대한 반복적인 묘사를 통해 어느 순간 그것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서 ‘해마’는 인간의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이면서 동시에 바다 생물 ‘해마’를 지시한다. 작가는 해마에 대한 상상적 묘사를 통해 그에 대한 실체적 규명을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대입해 그 존재감을 계속 변형시킨다. 내레이션과 다양한 스틸 및 영상 이미지를 선택적으로 재배열해 이루어진 이 작품은 집단적 망각과 퇴행의 징후들을 우화적으로 드러내며, 오늘날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이미래는 작업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자재(시멘트, 각목 등)를 토대로 다양한 매체를 혼합해 물성의 조형적 변주를 실험해왔다. 특정 상황을 구성하고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은, 이 전시에서 키네틱 작업 , 《뼈가 있는 것의 운동》, 《뼈가 있는 것의 케이크 갤러리 운동》(2016)을 통해 주어진 공간적 조건에 개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공산품에 가까운 철골 구조물 “뼈가 있는 것”에 ‘유토’를 입힌 작가의 형태적 관심은 ‘유사-의인화’(pseudo-anthropomorphic)를 지향한다. 이 작품은 풀리지 않는 무언가에 ‘살(피부)’을 입히고 물리적 운동감을 주어, (풀리지 않아) 답답한 감정적 상태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모습을 고안한 것이다. 이는 무슨 생각인지 짐작하기 어렵거나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단어, ‘띵’(thing)이 포괄하는, 어이없지만 그럼에도 갑작스레 단순화되는 순간을 직관적인 표현으로 은유한다.

이제는 그림 속 풍경과 인물에 내재한 풍부한 ‘정동’을 완결된 명사 혹은 형용사적 묘사가 아닌 ‘동사형’으로 그려낸다. 《더미》(2012)에서는 도시 개발 현장의 폐허 더미에서 생명을 잉태한 부푼 배를 상상하고, 임신한 여성의 초상 《웃는 여자》(2012)에서는 도상이 나타내는 생명, 희망, 기쁨과 같은 전형성을 내던지면서 그와 정반대로 심리적인 불안과 막막함을 서늘하게 표현한다. 이미지에 대한 익숙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 이면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작가에게, 세상의 모든 풍경은 양가적인 역설을 품고 있다. 신작 《공생연구》(2016)는 작가가 처음 흙으로 빚어 만든 다양한 크기의 ‘알’에서 출발한다. 둥글게 부푼 ‘알’의 형태는 저마다의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숨구멍이자 ‘입’을 은유하며, 다양한 여성들의 숨소리이면서 발화의 (실현) 가능성을 내포한다. 세 작품 모두가 공통적으로 둥근 표면 안쪽에 ‘빈-공간’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동그란 것의 ‘비정형성’은 형태적인 유사함을 넘어 원형적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제의적인 성격을 띤다.

양윤화+이준용은 (작품 제목이기도 한) “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이메일을 교환해왔다. 그리고 서신의 마지막 문장에 달린 마침표를 도려내어, 이를 동그란 종이 조각으로 변환시켰다. 이 실루엣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시 이어지는 이 작업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각자의 오브제’를 감춰둔 채 상대의 실루엣을 자신의 오브제에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때문에 ‘두 오브제’는 상대방의 실루엣과 기묘하게 어긋나고 닮아가는데, 작업 과정이 완전히 끝나면 처음의 마침표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 (전시장에서 비로소) 서로 확인하게 된다. 동일한 공간도 안팎으로 나뉠 수밖에 없듯 ‘불가능한 동일화’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타자의 위치에서 서로에게 파악 불가능한 ‘달의 뒷면’을 남겨두면서 추측과 상상, 상호교환의 과정을 거친다.

정희승은 사진 매체의 한계와 그 가능성을 특유의 조형성을 통해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Tender Buttons》시리즈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1914년에 발표한 동명의 책에서 작품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물건, 음식, 방이라는 세 가지 챕터로 구성된 이 짧은 에세이는 뚜렷한 주제나 내용을 포착하기 어려우나 언어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평범한 대상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적 방식을 새롭게 한다. 정희승 작가의 사진적 행위 역시, 사진 속 사물들이 기호의 익숙한 도식성에 반하고, 상투성에서 벗어나 모호하고 낯선 감각을 촉발시킨다. 이때, 작가 자신이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려는 그 ‘사이의 감각’을 포착하는 순간, 표면에 드러난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와 같은 그 ‘배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이로써 이미지는 기획된 의미 속에 사물을 고정해버리는 시선에 반하여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참여작가 소개]
김영글
은 미술로서의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청춘과 잉여》(커먼센터, 2014), 《러닝머신》(백남준아트센터, 2013), 《아직 모르는 집》(아트스페이스 풀, 2013), 《다시-쓰기》(두산갤러리, 2013), 《바늘 하나 들어갈 틈》(스페이스99, 2011), 《언어놀이전》(성곡미술관, 2010) 등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2년 KT&G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Six Fingers》를 열었다. 현재 사회운동 월간지 「오늘보다」의 편집디자인을 맡고 있다.
이미래는 대학에서 조소와 영상연합매체를 전공했다. 조각, 영상, 키네틱,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3차원 작업물이 지니는 박력과 귀여움, 그리고 입체 매체 고유의 둔탁함을 탐구한다. 2014년 인사미술공간에서 개인전 《낭만쟁취》를 열었고, 《굿-즈》(세종문화회관, 서울 2015), 미디어시티 서울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6)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이제는 회화작가이다. ‘자립’, ‘연대’, ‘창작’, ‘비평’, ‘삶’이 연결되는 지점들을 고민하면서 회화-하기를 지속적으로 실험한다. 2015년부터 합정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양윤화와 이준용은 올해 초부터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글을 주고 받는 느슨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그동안 텍스트로 축적되어온 물음표의 두께를 ‘물질’로 변환하는 시도를 한다.

정희승은 사진을 주된 매체로 다루면서 사진의 재현성과 그 한계에 대해 사유하며, 다영한 형식과 매체로의 확장과 실험을 지속해오고 있다. 《Rose is a rose is a rose》(페리지 갤러리, 서울, 2016), 《정희승》(피케이엠 갤러리,서울, 2014), 《아트스펙트럼》(리움미술관, 서울, 2014), 《부적절한 은유들》(아트선재센터, 서울, 2013), 《Still Life》(두산갤러리, 뉴욕, 2012)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기획자 소개]
조은비는 KT&G 상상마당 갤러리(2010~2012), 아트 스페이스 풀(2013~2015)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잉여, 거주, 젠더, 공동체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출발한 고민을 토대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조건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미술의 언어로 드러내는 데에 관심을 가져왔다. 《파동, The forces behind》(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공동기획, 두산 갤러리 서울, 뉴욕 2012), 《아직 모르는 집》(아트 스페이스 풀, 2013), 《여기라는 신호》(갤러리 팩토리, 2015), 《내/일을 위한 시간》(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6) 등을 기획했고, 공동 번역서 『스스로 조직하기』(미디어버스, 2016)를 출간했다.


 작품 배치도 및 전시서문 다운로드 : 전시배치도 및 전시서문.pdf